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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오직 모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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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 | 1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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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옮긴이) | 현각 ㅣ 무산본각 |
발행일 | 1999년 5월 19일 |
도서정보 | 신국판 ㅣ 266 페이지 |
ISBN-10 | 8987480194 |
ISBN-13 | 9788987480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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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일,가족,인간관계,출가수행에 관한 글
28년 동안 해외에 체류하면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숭산 선사의 영문 서한집 《오직 모를 뿐 (Only Don’t Know)》이 출간되었다. 이 서한집은 훌륭한 선사들의 가르침만을 따로 떼어 해석한 고전적인 책들과는 달리,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다양한 고민거리가 담긴 편지와 그에 대한 불교적인 해결책들이 담긴 답신이 실려있는 서한집이다.
《오직 모를 뿐》에서는 대선사 특유의 어투(語套)와 어의(語義)를 살려 재번역하여 새롭게 편집하여 담아냈다. 숭산 선사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에서는 그 편지들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만을 수록한 이 서한집이 외국 수행자들의 선(禪)수행 교과서로 읽히고 있다.
“오직 모를 뿐”이란 숭산 선사가 이 서한집에서 편지 말미마다 제자들에게 이르는 말로, 이 대선사의 가르침의 요체이자 청정심의 다른 표현이다. 숭산 선사는 제자들에게 마음이 제멋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분별하고, 선호해서 앎을 금계(禁戒)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인생에 혼란을 주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안다”는 생각 때문이다. 숭산 선사는 안다는 생각을 초월한 마음, 부처도, 나도, 말씀도, 아무것도 없는 무심(無心), 본원심(本原心)으로 돌아가야만이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을 위한 행동으로 바뀌는 대비심(大悲心)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숭산 선사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의 스승인 고봉 선사에게 전해받은 것이며, 그것은 또 고봉 선사의 스승인 만공 선사에게서 받은 것이다. 이 맥은 한국 선사, 중국과 인도의 선사를 통해 결국은 부처님에게까지 가 닿는다.
이 서한집은 불교나 동양정신에 낯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불교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선불교에 대해서 이제 막 관심하기 시작했거나 갓 수련을 시작한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선수행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누구나 인생에서 맞닥뜨릴수 있는 여러가지 고민거리(일, 질병에서 오는 고통, 가족, 인간관계 등등)를 두루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불교와 무관한 일반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숭산 선사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들은 의사, 기자, 학자에서부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 출가를 마음먹고 있는 수행자, 이미 출가의 길에 들어선 납자(衲子),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평범한 부모,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 피붙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그만큼 그들이 토로하는 문제 또한 다양하고, 숭산 스님은 이 서한집에서 한결같이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해결책을 선불교적으로, 그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차근차근 내놓는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고민, 수행 중에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솔직히 털어놓고 ‘어떡하면 되나요?’라고 물으면, 숭산 선사는 얽힌 실타래를 한 줄로 매끈하게 풀어주면서 ‘오직 모를 뿐’이라는 답을 보낸다. 불교나 동양정신에 낯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불교를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이 책을 읽고 나면 숭산 선사의 비상한 심침(心針)의 효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인의 마음을 한국의 선(禪)으로 사로잡은 세계 곳곳에 한국 선(禪)을 뿌리내린 숭산 선사는 삶과 유리된 참선과 수행이 아닌 생활 속의 선을 제시하며 서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분적으로는 한국 불교의 전통을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 상황에 적합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미국, 유럽, 폴란드, 아프리카 등 5만 여 명의 외국인 스님에게 영혼의 가르침을 준 이들의 스승, 숭산 대선사가 제자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인생의 혜안을 배우게 될 것이다.
숭산 선사는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장로교 계통의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참된 진리를 구하기 위해 1947년에 충남 마곡사로 출가하였고, 행원(行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49년 상두암에서 당시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이었던 고봉 대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幢號)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祖師)가 되었다. 1966년 일본으로 건너가 해외 포교에 앞장서 1972년 미국에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세계 35개 국의 50여 개 선원(禪院)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1985년에는 세계평화문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수유리 화계사 조실(祖室)로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선이란 무엇인가?
참다운 마음 공부 ─ 14
교도소에서 온 편지 ─ 19
얻는 바 없음을 얻어라 ─ 27
다른 이들에게 참선 수행을 어떻게 설명할까? ─ 28
오뚝이 인형처럼 중심을 잡으세요 ─ 33
너는 무엇인가? ─ 37
딸에게 배워야만 합니다 ─ 38
선은 평상심이다 ─ 42
그것을 찾다 ─ 48
고통에 대하여
인생 행로 ─ 50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미쳤다 ─ 56
아플 때에는 아프기만 하세요 ─ 59
불타는 집 ─ 65
지붕 한가운데에서 내려와야 할 때 ─ 68
일에 대하여
창도 없는 소란스런 작은 방 ─ 76
베트남에서의 기억들 ─ 79
과학과 선(禪) ─ 81
당신의 본분사(本分事) ─ 86
그대의 일은 무엇입니까? ─ 90
기자의 펜끝 ─ 91
가족관계에 대하여
네 가지 종류의 분노 ─ 98
삶과 죽음의 일대사(一大事) ─ 104
딸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 108
더 이상 남편을 따를 수 없어요 ─ 118
선을 하는 마음을 던져 버려라 ─ 122
출가 수행에 대하여
스님이란 어떤 사람인가? ─ 130
다른 스님, 다른 행동 ─ 137
단순한 삶, 막중한 책임 ─ 145
불교 본연의 전통 ─ 157
참선 수행법
강한 좌선이란 무엇인가? ─ 170
좌선을 할 때에는 좌선만 ─ 173
망념심·일념심·청정심 ─ 178
수준 낮은 수행 ─ 182
수행에 따르는 장애 ─ 187
병을 알고, 맞는 약을 복용하라 ─ 195
공안 수행에 대하여
꽝!! ─ 202
'멍멍' 개 짖는 소리가 무(無)자 보다 낫다 ─ 204
아야! ─ 208
공안 수행의 의미 ─ 209
머리는 용, 꼬리는 뱀 ─ 216
이미 죽었다 ─ 221
선과 기독교 ─ 224
거울에 비친 얼굴 ─ 229
한 걸음 더 ─ 232
함께하는 수행
혼자만의 수행 ─ 234
함께하는 수행 ─ 239
당신의 휘발유는 소진되지 않았다 ─ 246
꿈에서 깨어나라! ─ 250
위대한 법(法)의 바다 ─ 255
스승과 제자
스승을 찾는 일 ─ 260
난잡한 법의 현장과 깨어진 계율 ─ 263
선사보다 더 낫다 ─ 269
29개의 나 ─ 272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가둔다 ─ 276
내버려 둔 꿈 ─ 282
그림으로 보여주는 가르침 ─ 288
숭산 대선사의 생애 ─ 305
선원(禪圓) ─ 325
옮긴이의 말 ─ 326
인생의 항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이거늘
네가 태어날 때 어디에서 왔는가?
네가 죽을 때 어디로 갈 것인가?
인생이란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것을.
죽음이란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것을.
허공을 흘러 다니는 구름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
삶과 죽음, 오고감이 바로 이와 같구나.
하지만 항상 분명한 것이 하나 있으니.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순수하고 청정한 것.
순수하고 청정한 그 하나는 무엇인가?
1978. 5. 27 숭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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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세계로 바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어떤 형태, 감정, 느낌, 자극, 인식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눈, 귀, 코, 혀, 몸, 생각도 없을 것이고 그 어떤 색, 소리, 냄새, 맛, 감촉도 없을 것이요 생각할 대상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비어 있다면 이미 완전한 것이며 너 자신이 절대자이다.
그리고는 쾅! 너는 깨닫는다. 그러면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도 있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은 어떤 선사의 가르침과도 상관 없는 것이다. 선이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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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자체로 항상 완벽하다.
무슨 말인가하면, 네 마음이 완전하다면 모든 것이 완전할 것이요, 네 마음이 완전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완전하지 못해, 순간 순간이 큰 걱정거리라는 뜻이다. 완전하지 않다 함은 어떤 것을 억지로 생각한다 뜻이다.
이는 곧 그 생각 속에서 나와 너, 주체와 객체를 따로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완전하다함은 그 어떤 것도 억지로 생각하지 않음이요, 이미 모든 것이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라.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실, 이 책은 침술(鍼術) 책과 같습니다. 환자가 훌륭한 의사 선생님께 마음이 울적하여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과 같은 그런 ‘사례’들이 엄선되어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불편함을 호소하는 자신이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은 그 불편함이 무언지 명확히 알 수도 있고 혹은 모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고 갇혀 있어 숨막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참된 성품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자기의 성품을 아는 것뿐입니다. 불편함이 늘어난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토로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에 관하여 의사에게 열심히 설명하지만, 의사는 가볍게 고려해보거나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듣기는 하겠지만 그저 듣고, 알아차리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받아들일 뿐 다른 상황과 연계된 선입견을 갖지는 않습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말들은, 의사에게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유용할 뿐입니다.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말의 홍수 속에 가만히 앉아 무심한 얼굴로, 동요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의 이끼가 끼어 까맣게 된 암석처럼, 설명을 해 나가는 환자의 얼굴 위로 휙 스쳐 지나는 보이지 않는 징후들을 주목하여 살핍니다.
희미한 열기가 얼굴의 이곳 저곳을 유동하더라도, 그것은 곧 사라져 버릴 홍조입니다. 얼굴 근육에서 잠시 나타나는 긴장도 단지 피부 밑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눈자위가 건조해지고, 입에는 침이 고입니다. 환자는 여전히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에 의사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쥐구멍 앞에 웅크리고서 쥐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처럼, 여러분이나 내 눈에는 더 잘 보일 수도 있고 더 안 보일 수도 있는 것들(이를테면 벽 뒤에서 은밀히 긁어대는 소리나 밭은 숨소리 또 지금 어디 있으며 어떻게 하려는지 눈치채게 하는 작은 움직임들)에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쥐를 덮칩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값비싼 연장이나 기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론이나 과학기술 또는 치료요법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책에서 얻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의 결정적인 일만이 필요합니다. 즉,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확고하게 틀어쥐는 일 말입니다. 온전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오직 모를’ 뿐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적 스승 가운데 한 분이신 숭산 스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가르침을 모은 것입니다. 서울 화계사(華溪寺) 조실이신 숭산행원(崇山行願) 대선사(大禪師)님은 여러분이 만났거나 만나게 될 그 어떤 분보다도 뛰어난, 가장 노련하고도 자연스러운 심침(心針)의 교사입니다. 이 책에 실린 그분의 가르침이 담긴 편지들을 읽고나면 그분의 비상한 심침의 효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면에서 이 책은 여느 편지들을 모은 책과는 전혀 다릅니다. 훌륭한 영적 스승들의 편지들을 모아 표준적이고 고전적으로 번역한 책들은 스승의 가르침과 제자의 물음이 담긴 편지들을 함께 싣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무엇을 물어 보았었는지 개의치 않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만을, 마치 스승의 가르침만 있었던 것처럼 책에 싣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자가 자기 수행의 어느 부분에 걸려 불평하는지는 무시하고 마치 스승의 가르침만이 텅 빈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은, 드러난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과정을 통하여 그 병을 보다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세계의 도처에서 선사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선원(禪院)에서는 이 책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편지들(제자가 보낸 편지 하나와 선사님의 답장)을 매일 아침과 저녁 수행 시간에 다 함께 큰 소리로 읽고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선원에서 매일 큰 소리로 이 편지들을 읽는 소리를 듣는 젊은 제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매우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제자가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듣습니다. 여러분은 자주 “나라면 그 편지에 담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하여 줄 텐데”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여러분은 소(小) 선사의 입장이 되어 여러분 나름의 가르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선사님의 답장을 읽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숭산행원 선사님의 편지에 실린 증상을 다루는 탁월한 솜씨와 명료함에 흠칫 놀라고, 충격을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선사님께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분은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보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자신의 깨달음이란 관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정통으로 겨냥하여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 버립니다. 너무나 정곡을 찔러, 특히 강력하고도 직설적인 가르침을 듣게 된 법당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몸을 움찔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몇 차례 이런 절묘한 경험을 하면서 편지를 다 읽을 즈음이면, 여러분은 그 가르침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분의 방편(方便)은 여러분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쓴 편지는 여러분이 썼을 수도 있는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은 여러분 내면의 문제도 치유해 줍니다.
허리의 통증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머리에 침을 놓는 침술사처럼, 그분의 가르침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처방을 받는 이나 듣는 이(바라건대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모두의 내면에 갇혀 있는 활력을 풀어내 줍니다. 최근에 몇몇 분들이 제자들의 편지는 싣지 않고, 숭산행원 선사님의 가르침을 훨씬 더 많이 담은 서한집을 출판하자고 제안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병이 무슨 병인지 알려주지 않고, 그 병을 고치기 위한 약만 보여주자는 것입니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 말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편지도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은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서 가려 뽑은 것입니다. 서양에서 거의 30년을 쉼없이 펼치신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숭산행원 선사님은 당신에게 온 모든 편지에 대하여 빠짐없이 답장을 쓰셨습니다. 수 천 통에 이르는 편지와 카드를 영어로 썼는데, 편지의 끝에는 항상 ‘숭산 합장’이라고 서명하였습니다(이 책에는 50여 년 전 깨달음을 얻고 전법건당하신 이래 한국의 수행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나 한자와 영어로 가르친 중국계 제자들과 나눈 편지는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편지들을 읽고 알 수 있듯이, 이 경이로운 스승께서는 법회나 설법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떠난 후에 지난번 머물렀던 선원에서 비서가 모아 다시 보낸 수많은 편지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답장하였습니다. 영어로 쓰여진 편지들만 하더라도 이 책 분량으로 70∼80권은 될 것입니다. 한 분의 선사가 감당한 이 엄청난 분량의 편지 왕래는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어느 제자가 그분께 왜 편지를 주고받는 일에 그토록 많은 애를 쓰시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그분의 대답은 그분이 하시는 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속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많은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보니 쉽게 나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편지를 써서, 내게 보냅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가르침이라는 약을 보내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을 만들면서 그분이 ‘편지를 통한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작업의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출판되지 못한 채 남겨진 많고 많은 매혹적인 편지들이 있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2000년 11월 1일
서울 삼각산 화계사
현각 합장(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