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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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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옮긴이)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ㅣ 정현종 |
발행일 | 2002년 04월 |
도서정보 | 변형판 ㅣ 195 페이지 |
ISBN-10 | 8987480488 |
ISBN-13 | 9788987480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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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일상적인 상식을 단숨에 뒤엎는 자기로부터의 혁명!
80년대 초, 명상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너도나도 인도행을 결심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었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크리슈나무르티. 그는 신지학협회에서 ‘세계의 스승’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메시아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사상적인 추종자들과 인연을 끊었던, 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사상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안정, 자기 계발, 대인관계, 스트레스와 불안 해소에 관한 명상서가 베스트셀러를 장식하고 있다. 80년대에 비해 자기 중심적이고 실용적인 명상서를 선호하게 되었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1980년대에 폭발적인 명상 붐을 일으켰던 20세기 최고의 영적 지도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물병자리에서 새로 출간되었다. 지난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정현종 시인의 유려한 번역 솜씨로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내 편집한 개정판이다.
이 책은 자유롭다면 행복하다는 변치않는 테마를 말하면서도 결코 ‘행복의 답안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산파 노릇을 하는 책이다. 또한 최근의 에세이 형태의 가벼운 명상서적들이 담고 있는 공허한 메시지와는 달리, 현대인들의 불안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치유해준다는 점에서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다시 책머리에
옮기고 나서
첫 번째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두 번째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
세 번째 삶의 전체성
제 번째 기쁨과 쾌락 사이
다섯 번째 공포로부터의 자유
여섯 번째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일곱 번째 관계에 대하여
여덟 번째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아홉 번째 시간의 초월
열 번째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열한 번째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열두 번째 내가 바라보는 것들
열세 번째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열네 번째 어제의 짐들
열다섯 번째 명상에 대하여
열여섯 번째 완전한 혁명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싶어한다. 사회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경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대접받고 반면에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은 천대받는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어떤 지위를 원하고 또는 신의 오른팔 위에 앉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지위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건 아무 지위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단상에 앉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우리는 불행과 비참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인물로 영겨지는 것은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다. 지위 · 위세 · 권력을 얻으려는 갈망, 사회로부터 뛰어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갈망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바람이며, 이 지배에 대한 욕구는 공격의 한 형태다. 자기의 성자다움에 비추어 어떤 지위를 찾는 성자는, 농가의 마당에서 부리로 모이를 쪼고 있는 닭처럼 매우 공격적이다. 그러면 이 공격성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공포다. 그렇지 않은가?
공포는 삶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 가운데 하나다.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은 혼란 속에, 갈등 속에 살며, 따라서 난폭하고 뒤틀리고 공격적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며, 위선을 키운다.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는 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고 모든 종류의 신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자유롭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어둠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두려움을 낳는 경쟁적 교육을 받으며 부패하고 우매한 사회에서 살 때 우리는 어떤 공포에 눌리게 되는데, 이러한 공포는 우리의 나날을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무디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다.
육체적 공포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동물들로부터 물려받은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심리적 공포다. 뿌리깊은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면 동물적 공포와 맞설 수 있는 데 비해, 동물적 공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 p.63~64
대지가 항상 비를 필요로 하고 건물에 창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는 항상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그 지혜의 샘이 마르지 않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데,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기록한 책들이 바로 그러한 책 중의 하나이다.
여러 해 전 내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뒤 한때 크리슈나무르티 붐이 일었었는데, 사실 그의 말들은 한때 유행하고 끝날 말들이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는 더욱더 계속 음미되어야 할 말들이다. 그의 말들은 어떤 조직적인 종교의 경전으로 신봉되는 게 아니어서 ‘제도적·종교적 권위’를 누리지 못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읽힐 기회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한테는 더욱더 현대적 경전이 되며 더없는 보석으로 빛을 낼 수 있는 야생적 지혜의 밀림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예 중에서 한 대목을 읽어보면
“모든 길은 진리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리는 길을 갖고 있지 않으며, 바로 그 점이 진리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진리는 살아 있다. 죽은 것은 그것이 정적(靜的)이기 때문에 길을 갖고 있지만, 진리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쉴 곳이 없다. 어떤 절이나 교회에도 없으며 어느 종교나 선생, 철학자 그 누구도 당신을 진리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이 살아 있는 것이 다름아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금방 느낄 수 있듯이 이러한 접근 방법, 이러한 사고방식, 이러한 통찰은 그 어떤 거창하고 세력 있는 종교, 그 어떤 체계적이고 도식적인 철학에서도 보지 못한 전혀 새롭고 혁명적인 접근 방식이요 통찰이다. 그리고 이 말은 크리슈나무르티 자신의 말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생래적으로 매인 데 없는 영혼, 그 어디에도 매일 수 없는 영혼의 말은 그걸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 가서 그의 길이 될 것이다.
-정현종
"과거기억에 머물지말고 미래희망에 속지마라"
책이란 묘한 것이다, 책방에 널린 즐비한 책들 속에서 이 책을 골라 쥐는 순간 내게 어떤 떨림이 있었다. 이 책을 옮긴 정현종씨가 30년 전, 외국의 한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물 같고 숨같은’ 책임을 감지했을 때와 모름지기 비슷한 떨림일 것이다. 좋은 책은 발견하는 순간 느끼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눈에 띄는 얼굴이 있듯, 좋은 책은 죽은 책들과 달리 살아서 숨쉬고 있는 자신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을 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음과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우리들은 선생에 의해, 권위자들에 의해, 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 먹여지듯 양육되었다. 그리하여 원래의 모습 그대로, 그 명징함으로 남지 못했다. 우리 각자는 ‘과거로 채워진 창고’다. 우리가 어제의 죽은 권위로 자신을 바라 볼 때, 우리는 살아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게 된다. 권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어제의 모든 것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때 고독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것이 된다.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해야한다. 가난이란 사회적 고독이다. 사회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자기의 둘레에 벽을 쌓고 스스로를 봉쇄하는 것은 고립이다. 이것은 고독이 아니다. 고립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고독은 다른 것이다. 고독은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또한 미래는 우리가 즐겨 숨는 도피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평화롭게 안주할 내일은 없다. 내일은 내일의 고뇌로 가득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사기꾼이다. 시간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 행동하지 못할 때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시간은 슬픈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배운다는 것은 과거가 없는 끊임없는 운동이다. 과거의 것임에도 끊임없이 현재를 지배하는 관념과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참 잘 배우고 있는 것이다, 배고플 때, 우리는 이 배고픔을 어제의 배고픔과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의 배고픔은 기억일 뿐이다. 비교하지 마라. 만일 내가 나를 다른 사람과 저울질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면 나는 내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의 환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파괴한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비가 나뭇잎에 오래 쌓인 먼지를 씻어내듯 그렇게 비와 나뭇잎으로 만나야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시시한 명상 책이 아니다. 과격하고 무자비한 책이다. 과거와 미래를 죽임으로써 오늘을 오늘답게 만들라고 선동한다. 매순간 죽어야 매순간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혁명은 거듭됨으로 비로소 혁명이 될 수 있다.
- 동아일보 - 구본형/변화경영전문가(200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