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배송 가능
도서명 | 초감각적 세계인식 |
---|---|
판매가 | 6,500원 |
적립금 | 195원 |
수량 | |
저자(옮긴이) | 루돌프 슈타이너 ㅣ 양억관, 타카하시 이와오 |
발행일 | 1999년 12월 5일 |
도서정보 | 변형판 ㅣ 224 페이지 |
ISBN-10 | 8987480291 |
ISBN-13 | 9788987480299 |
수량 |
---|
신비 수행에 입문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
인간의 혼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진화된 혼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현자들은 우리 삶의 고차원적인 수수께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대체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에서 답하고, 삶의 수수께끼를 깨닫는 신비 수행에 입문하기에 적절한 길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신비 수행법과 그 효과는 인간의 혼과 온전한 의식만으로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은이는 이 책이 지은이와 독자 사이의 개인적인 대화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세계적인 석학이 스스로 체험한 신비수행법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하는 개인적인 전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판 머리말
5판 머리말
용어 해설
초감각적 세계 인식의 길
영계입문의 3단계
실천적 관점
수행의 조건
영계입문의 영향
꿈의 변화
의식의 연속성
인격의 분열
문지방의 수호령
삶과 죽음―문지방의 대수호령
8판 후기
옮긴이 말
올바르게 수행하면, 누구나 이 3단계의 명칭과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의 영계입문도 가능하다.
..... 중략 .....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준비, 2) 깨달음, 3) 영계입문.
이 3단계를 순서를 밟으면서 나아갈 필요는 없다.
때로는 어떤 특정한 부분에 관해서는 비록 다른 영역이 아직 준비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깨달음과 영계입문의 경지가 달성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일정한 기간 동안, 깨달음의 단계에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준비단계의 수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계입문이 시작될 때는 적어도 약간의 사항에 관해서는 깨달음을 얻은 상태여야 한다. 여기서는 표현상의 편의에 따라, 3단계를 차례대로 기술하겠다.
3판 머리말
이 글은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루시퍼-그노시스》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에 관련된 내용 가운데서도 제1부에 속한다.
그 이외의 내용은 다른 저술을 통해 밝힐 생각이다.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에 이르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다루는 이 글을, 새로운 장정으로 독자에게 보여드리기에 앞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인간 혼의 진화에 대해 기술한 이 글은 다양한 독자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영학(靈學:Spiritual Science)이나, 그 연구성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의문을 가진다. 우리네 삶의 고차원적인 수수께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는 걸까, 하고. 이 글은 그 의문에 대답하려 하고 있다. 영학은 인생의 고차원적 수수께끼, 그 본질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초감각적인 인식을 손에 넣을 때만, 영학적인 관점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음미할 수 있다. 이 글은 그런 초감각적 인식에 이르는 길을 묘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욕구나 그 가능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영학의 연구성과는 결코 가치없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초감각적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자만이 연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발표된 연구성과가 타당한가 아닌가는, 초감각적 인식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정으로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건전한 판단력을 구사한다면, 영학 연구의 성과는 그 대부분이 직접 검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해도, 우리네 삶의 여기저기에 널린 편견들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현대과학의 학설을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전적으로 영학의 관점과 모순되는 연구성과는 과학의 분야에 있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과학적인 연구성과를 잣대로 삼아, 초감각적 세계에 대한 기술과 특정한 과학적 인식 사이에는 어떤 일치점도 없다고 믿는 쪽이 마음 편한 일이다. 그러나 신중하고 진솔한 자세로 영학과 실증과학의 연구성과를 잘 비교해보면, 양자 사이에 있는 놀랄 만큼 완벽한 일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영학에는 오성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오성뿐 아니라, 건전한 감정 또한 진리의 판단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오성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때마다 공감과 반감만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에서 벗어나,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 내용을 자신에게 작용시켜 일어나는 감정의 움직임 속에서, 합당한 가치판단의 잣대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초감각적 세계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걷지 않는(또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식 내용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우리는 영학 연구자의 말을 통해 알게 된 인식 내용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 견자(見者)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견자의 인식 내용은 우리 삶에 유익한 양식이 될 수 있다.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해, 누구든 이러한 인식 내용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삶의 모든 방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인식 내용 없는 인생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이윽고 통찰하게 될 것이다.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 내용을 우리의 삶에 올바르게 적용할 때, 그것은 결코 비실용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최상의 의미에서 유용한 것이다.
인식의 좁은 길을 걷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 관찰된 사실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견자가 그러한 사실들을 인식하게 되었는가를 새삼 진솔하게 물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초감각적인 세계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제공해줄 것이다. 초감각적 세계에 이르는 길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에 신뢰감을 가지게 하고 싶다. 영학 연구자의 길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길을 정당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를 것이며, 또 다음과 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고차원 세계에 이르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지금, 영학 연구자가 말하는 바가 왜 내 마음을 밝게 비추어주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진리감정이나 진리감각 속에 초감각적 세계의 확인과 보증을 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은 쓰여졌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이 글은 초감각적 인식에 이르는 길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전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여기 기술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자기 스스로 살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의도로 쓰여진, 영적 계발을 촉발하는 저술을 읽는 데에는, 특정의 지식을 전하는 다른 많은 책에 대한 태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표현된 내용 속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내용을 이해하려 할 때, 그 내용에 관한 부분만이 아니라, 다른 내용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의 진리 속에 본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적 조화와 일치 속에 그것이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수행자는 이 말을 진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의 행(行)은 올바르게 이해될 때에만 올바르게 실천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행(行)은 혼의 조화를 위해서 그 일면성을 보상할 수 있는 다른 행이 수행자 자신의 손에 의해 추가될 때 부정적인 작용을 피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그 내용들이 하나의 내적 체험이 되기에 이른다면 독자는 지식으로서 아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어떤 감정을, 또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감정을 체험하기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 인간 혼의 진화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자신의 개성에 맞게 의식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행을 하는 것이 또 얼마나 바람직한가도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 체험해야 할 내용이 다루어진 글은 될수록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실천해 보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미묘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많은 부분은 행을 통해서 비로소 만족할 만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술된 길을 실천적으로 걷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생활에 있어서 유익한 것, 이를테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규칙들이나 수수께끼 같은 현상에 조우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지 이 글을 통해 시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풍부한 인생경험을 쌓아 인생의 다양한 측면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여태까지 개별적으로 이해한 것들이 하나의 그물처럼 관련성을 가지고 통일되는 것을 느끼고, 어떤 만족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909년 10월 12일, 베를린
루돌프 슈타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