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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색채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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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옮긴이) | 루돌프 슈타이너 ㅣ 양억관, 타카하시 이와오 |
발행일 | 2000년 1월 22일 |
도서정보 | 변형판 ㅣ 120 페이지 |
ISBN-10 | 8987480305 |
ISBN-13 | 978898748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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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색은 진동하는 파장이다
근대 이후 색의 본질을 밝히는 것은 물리학의 과제였다.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색채는 '물체가 흡수하기를 거부하여 튀어나온 진동하는 빛의 파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물체가 없는 곳에서는 빛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이론을 '색채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지은이가 전개하는 논리는 물질이야말로 색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라는 '색채령주도론(色彩靈主導論)'이다.
슈타이너는 많은 영계통신을 행하면서 윤회, 전생, 영계입문 등 영학(靈學)에 대해 많은 업적을 남긴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사상가이다. 화가들을 위해 열린 '색채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강연을 정리한 이 책에서, 그는 색채의 우주론적인 근원적 성질을 명백히 드러내려 하고 있다. 색채는 물질계와 영계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색채를 통과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영계로 이입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 세계와 자연과 우주의 영적 체험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에게라면,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독서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미술 관련 서적은 아니다. 옮긴이는 슈타이너의 문헌 가운데서 이 책이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머리말
용어 해설
색채 체험과 네 가지 상(像)의 색
색채의 상(像)과 광휘(光輝)
색채와 물질―색으로 그리기
공간 원근법에서 색채 원근법으로
예술 창조의 전제가 되는
색채 세계와 음향 세계의 도덕적 체험
옮긴이 글
색채는 물리학의 연구분야인 동시에 심리학의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 특히 화가는 색채 세계의 연구에 민감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관점을 돌이켜보면, 주관적인 색채 체험에 관한 심리학자의 기술과 객관적인 색채 세계에 관한 물리학자의 인식 사이에는 아무런 연계성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쪽에서 색채의 객관적인 본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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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생명의 죽어가는 영상
살색―혼의 살아 있는 영상
흰색 또는 빛―영의 혼적인 영상
검은색―-죽음의 영적인 영상
우리가 발견한 것은, 색채 속에는 항상 무엇인가의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색채는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영상이다. 때로 그것은 생명의 영상이고, 혼의 영상이고, 영의 영상이며 그리고 죽음의 영상인 것이다.
이 도식을 원으로 그리면 색채의 객관적 본질에 관한 독특한 원환이 생겨난다. 이 원환 속에서 검은색, 녹색, 살색, 흰색이라는 기본 색조의 상호관련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나의 색채를 형용하려면 우리는 항상 원주상의 앞에 위치한 것과 관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검은색은 죽음의 영적인 영상이며, 녹색은 살아 있는 것의 죽어가는 영상이며, 살색은 혼적인 것의 살아 있는 영상이며, 흰색은 영적인 것의 혼적인 영상이다.
이 글은 화가들을 위해 괴테아눔에서 열린 “색채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이 강의는 책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의 과제와 필요에 따라 행해진 구술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들의 살아 있는 대화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평소 제자들이 품고 있던 의문, 묻고 싶었던 것들,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강의는 속기사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열기와 생동감 넘치는 대화체 언어를 문자로 고착시키면 본질을 왜곡시키거나 미묘한 뉘앙스가 사라지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먼훗날 틀에 사로잡힌 문체로 책을 내기보다는, 아직도 슈타이너의 입김이 느껴지는 생생한 대화체를 그대로 제시하는 쪽이 루돌프 슈타이너를 배우려는 많은 독자들에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도 청중 앞에서 직접 강연하는 언어 형식 그대로를 전달함으로써, 루돌프 슈타이너의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유산을 오늘의 인류 사회에 건네주어야 할 나의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이 유산 속에는 거의 모든 분야의 과학과 예술의 생명력을 새롭게 활성화시킬 충동이 가득 차 있다. 소실된 괴테아눔의 크고 작은 두 개의 궁륭에 그려진 그 멋지고 충만한 색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헤로스트라토스*는 여기서도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그 화재에 의해 이중의 힘을 가진 사상과 충동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괴테아눔 천장화의 구성과 색채는 남겨진 슈타이너의 소묘 속에 암시되어 있으며, 괴테아눔의 상세한 계획도도 슈타이너의 메모에 남아 있다. 앞으로 이것들은 아름다운 색채로 인쇄될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1903년 여름, 나를 위해 몇 시간이나 정성들여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촛불과 커다란 흰 종이를 손에 들고, 빛과 어둠 속에서 황(黃)과 청(靑)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의 눈길은 마치 그가 말하는 색채의 본질과 하나가 된 듯이 맑고 곱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나에게 1만 마르크가 있다면, 그리고 필요한 도구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색채에 대한 괴테의 사상이 진리라는 것을 이 세상에 증명할 수 있으련만.”
당시 우리에게는 1만 마르크라는 돈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던진 시사는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제자들이 그 사상을 증명해 주리라 믿는다.
괴테의 색채론, 괴테의 자연관을 영적 세계관의 기초 형성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던 그의 생각은 18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는 1883년부터 1897년까지 15년 동안 작업한 퀴르슈너판 괴테 자연과학논집의 몇몇 서론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자연과학의 도그마와 동맥경화에 빠진 근대 철학의 관점 때문에 그의 외침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경직된 현대적 사고를 타파하고 틀에 박힌 형식에서 인간의 사고를 해방시키려 애썼다.
그의 실천은 그의 《신비극》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영학의 기초 형성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정신과 과학자의 사고를
그 단단한 형식주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을
또한 우주친화적인 진정한 존재를
체험할 수 있도록,
그런 사고를 내면에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을.
루돌프 슈타이너의 행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때문에 예술가는 인간을 창조적 언어에서 격리시키는 단단한 지성의 광물적인 벽을 깨뜨려야 한다. 바로 그때, 죽은 것이 다시 생명을 되찾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싹을 틔워 근원 생명의 힘을 되찾는 양상을, 슈타이너의 타오르는 우주 불 속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마리 슈타이너